혈액형과 성격이 서로 관련되었다는 생각은 20세기 초 유럽의 과학 인종주의에서 비롯되었다. 본래는 A형이 많은 순수 게르만 혈통이 우월하고, B형이 많은 아시아인은 열등하다는 생각이었다. 이게 일본으로 전해지면서 인종의 우열이 갈리는게 아니라 성격이 달라진다는 이론으로 바뀌었다. 일본인 자신도 동양인이니 차마 "우린 모두 열등한 인종이야."라고 말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일본은 이 이론을 군인을 양성하는데 적용하려 하였으나, 이론 자체에 과학적인 근거가 부족했기 때문에 설득력을 얻지 못해 묻히고 만다.

혈액형 인간학 표지

노미 마사히코의 [혈액형 인간학](1973)

이 이론은 그렇게 묻혔다가 1970년대에 일본의 노미 마사히코(能見 正比古, 도쿄대 공학부 졸업)에 의해 '혈액형 인간학'으로 정리되어 부활하였다. 노미 마사히코는 의학 경력이 전혀 없는 방송작가였는데, 그가 쓴 혈액형 관련 저서들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는 이로 인해 유명인사가 되어 TV에까지 출연하며 '혈액형 인간학'을 전파하였다. 그의 저서를 보면, [혈액형으로 알 수 있는 상성(血液型でわかる相性)](1971), [혈액형 인간학(血液型人間学)](1973), [혈액형 애정학(血液型愛情学)](1974)을 비롯하여 [혈액형 골퍼학(血液型ゴルファー学)](1982)에 이르기까지 혈액형과 관련된 것만 무려 13권에 이른다. 일본사회에서 얼마나 큰 인기를 얻었던지 [주간 산케이(週刊サンケイ)]의 협력을 얻어 일본의 유명인사 혈액형을 조사한 적도 있다.

노미 마사히코 부자 사진

노미 마사히코(좌)와 토시타카(우)

NPO 혈액형 인간과학 연구센터 배너

현재도 연구를 계속하는 NPO 혈액형 인간과학 연구센터(www.human-abo.org)

노미 마사히코의 사후(1981)에는 아들인 노미 토시타카가 계승하였으며, 토시타카의 사후(2006)에도 그가 설립한 NPO 혈액형 인간과학 연구센터에서 혈액형 인간학에 대한 연구를 계속 하고 있다.

혈액형 인간학은 과학적 근거가 없는 데다가 인간 차별의 원인까지 제공하므로 학계로부터 비난의 표적이 되어 왔다. 학계에서는 엄연히 과학이 아닌 사이비 과학으로 분류한다. 서양에서는 현대판 미신이라며 놀림감의 소재로 이용되나, 한국과 일본에서는 여전히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Fortunes by Blood Type
Fortunes by Blood Type by cincity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일본에서는 혈액형별 애인 사귀는 법과 처세술에 관한 책이 인기를 끌었으며, 심지어 혈액형별 콘돔 자판기까지 등장했다. 한국의 상황도 그다지 다르지 않다. 내가 찾아본 바로는 노미 마사히코의 [혈액형 인간학]이 1999년도에 번역 출판되었고, 그 후로도 노미 부자의 혈액형 상성에 관한 저서들이 줄곧 번역 출판되었다. 인터넷에서 혈액형을 검색하면 혈액형별 성격 특징에 대한 자료가 끝도 없이 나오며, 혈액형 때문에 고민상담을 하는 경우도 많다. 'O형 남자친구를 좋아하는데 저도 같은 O형이라서 궁합이 안 맞아요. 어쩌면 좋나요?'라는 식이다.

혈액형 관련 일본 드라마 광고그림

일본 드라마. 혈액형별 여자가 결혼하는 방법

인터넷 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혈액형을 이용해 성격을 점치는 사람이 흔하다. 나자신도 처음 만난 여자가 느닷없이 혈액형을 물어봐서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혈액형이 뭐에요?"
"□ 형이에요."
"아, 그럴 줄 알았어요. □ 형답게 성격이..." 어쩌고 저쩌고 계속 설명한다.
"하하. 그런 것 믿으시는군요.(라고 하지만 벌써 싫어짐)"

실제로 한국 여자들이 남자를 사귈 때 가장 많이 보는 것 중의 하나가 혈액형이라고 한다. 이제는 한국인 사이에서 하나의 문화로 온전히 정착한 것으로 보인다.

B형 남자친구 포스터

혈액형을 소재로 한 [B형 남자친구]라는 영화가 극장에 걸릴 수도 있다는 것이 이해가 된다. 그만큼 사람들이 믿고 따르니 수요가 있기 마련이고 수요가 있으니 만든 것이다. 물론 영화의 흥행성적은 별도의 이야기이지만 말이다.

속신의 논리(俗信の論理) 저자인 이타바시 사쿠미(板橋作美)가 캐나디안 프레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사람들은 성격 뿐만 아니라 모든 것에서 규칙을 찾아내려고 한다. 규칙이 있으면 예측하기 쉽고, 더 안전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혈액형 인간학에 열광하는 한국인의 모습은 모든 것을 계층화하고 획일화하려는 한국인의 성향과 밀접해 보인다. 숨쉬기조차 힘들 정도로 모든 것이 계층화되어 있는 한국사회에서 혈액형에 따라 정형화된 인간을 찾아내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더 월 영화 장면

ⓒ Goldcrest Films International, MGM/UA Entertainment company. All rights reserved.

하지만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혈액형 인간학을 믿는 것은 인간이 자유의지를 갖고 살아간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인간의 자유의지를 부정하는 것은 제 손으로 족쇄를 채워 노예가 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혈액형 인간학 따위에 열광하는 한국사회를 보면 그 사유의 천박함에 씁쓸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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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제목: A형이 소심한 이유

    Tracked from LUV4US 2009/09/13 00:48  delete

    수년 전부터 전염병처럼 번지기 시작한 혈액형과 성격에 대한 글과 스크랩, 펌질을 보면서 가슴이 답답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대개는 재미삼아 읽을테지만 진정 내가 그 재밋거리를 경멸하는 이유는 아이들에 대한 염려 때문입니다. 엄마, 나는 왜 이렇게 소심해요? 어느날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아이가 하는 말. ‘소심’이라는 말이 무엇인지도 모를 꼬마의 입에서, 그것도 자신이 왜 소심하냐는 뜻밖의 질문에 엄마는 의아하지만 아이를 다독이는 것이 먼저...

  2. 제목: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혈액형' 광고의 불편함...

    Tracked from 라디오키즈@LifeLog 2009/09/21 17:15  delete

    A형, B형, AB형, O형이 한자리에 앉아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갑자기 AB형이 밥을 먹다 말고 벌떡 일어나 뛰쳐나가자 O형이 AB형을 뒤쫓아간다. 남겨진 A형이 B형에게 조심스레 묻는다. "쟤 혹시 나한테 화난거야?"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이젠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듣게되는 혈액형별 성격에 관한 유머다. 일본에서 들어와 국내에 뿌리내린 혈액형별 성격 분석은 독일의 우성학에서 출발해 일본에서도 1970년대에 확고히 자리잡았다고 하는데..

  3. 제목: 사람들이 혈액형 성격분석을 믿는 이유는?

    Tracked from 서른 살의 철학자, 여자 2009/09/22 02:31  delete

    많은 사람들이 혈액형 심리분석이 잘 맞는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뭘까? 혈액형에 따른 성격분석이 큰 인기입니다. 혈액형 분석을 신뢰하는 사람이든 아니든 간에, A형은 소심하고, O형은 단순하다는 식의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입니다. 혈액형에 관한 이야기는 인터넷에도 수만건, 책도 수십권, 엄청나게 많습니다. 혈액형 분석에 대해, '혈액형심리학' 이라는 말을 쓰는 분들도 있고, 연구를 하고 있는 분들도 있기는 하지만 아직 학문으로 인정되지 않은..

  4. 제목: 혈액형이 어떻게 되시나요?

    Tracked from 비내리는 마을 2009/09/22 20:10  delete

    혈액형으로 사람의 성격을 구분하는 건 아무런 근거가 없는 이야기라고 방송이나 언론에서 여러차례 다룬 일이 있습니다. 혈액형은 수혈, 급혈을 할 때나 필요한거라고 말이죠. 하지만 혈액형만 가지고 다른 사람을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다.'라고 선입견을 갖는 분들도 계십니다. 제 생각에도 혈액형으로 사람의 성격을 나누는 건 잡지에 부록으로 있는 별자리 점 만큼 아무런 근거가 없는 소리라고 생각합니다. 성격이야 유전이나 성장 환경에 따라 만들어지는거지 처음..

  5. 제목: 혈액형과 유전에 대한 생각..

    Tracked from 기타, 그리고 여유 2009/09/22 22:34  delete

    나의 혈액형은 B형. B형남자 신드롬 때문에 많은 타격을 입었던 B형이다. 혈액형과 성격이 정말 연관성이 있는 것일까? 의학적으로 근거도 없다고 하고.. 그래서 아무런 전문지식 없이 이리저리 생각해보았다. 1. 유전 혈액형은 부모님의 혈액형을 따르게 된다. 나의 아버지는 B(BO)형이고, 어머니는 O형이기에 자녀는 B형 아니면 O형 뿐이다. A형이나 AB형은 불가능하다. 자녀는 부모의 성격을 닮기 때문에 나는 B형인 아버지의 성격을 많이 닮아있다...

  1. BlogIcon LUV 2009/09/13 00:52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선입견이고 과민반응일 수 있지만, 혈액형 묻는 사람은 첫인상부터 좋지 않아요.
    호감이 있다가도 혈액형 신봉자라는 느낌이 들면 저는 더이상 상대를 안합니다.
    이러면 또 B형이라 특이하대요. -.-;;;

    • BlogIcon guybrush 2009/09/13 03:45  address  modify / delete

      저도 그런 사람을 보면 참 한심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어린 애들도 아닌 다 큰 어른들이 이런 걸 믿는 거 보면 참 답답하죠.

  2. BlogIcon GoodLife 2009/09/13 01:20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미팅/소개팅때 혈액형 물어 보던 옛날이 생각나네요. 참, 인간이 신비한 것은 사실인듯. 그냥 같은 혈액형이면 수월하게 그냥 수혈해줄텐데 말입니다. 그냥 재미로 믿어 보는 것은 나쁘지 않은 듯합니다. 인종 우월주의는 "절대"안됩니다.

    • BlogIcon guybrush 2009/09/13 03:48  address  modify / delete

      수혈 때문에 물어보는 거라면 고맙죠. 만약의 사태까지 걱정해서 챙겨주는 거니까요. 근데 그러려고 물어 보는 사람은 못 봤습니다. -_-;

  3. BlogIcon TISTORY 2009/09/21 14:39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안녕하세요, TISTORY입니다.



    티스토리 메인에서 '혈액형'을 주제로 회원님의 글을 소개해드렸습니다.^^
    혹시 노출과 관련하여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tistoryblog@hanmail.net 메일을 통해 말씀해주세요!


    앞으로도 재미있고 유익한 글로 자주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4. BlogIcon 가람검 2009/09/21 18:08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정확히 맞아 떨어지는건 아니지만, 참고할 정도는 됩니다.
    특히 본능적 욕구에 충실한 어린이들은 혈액형별 특징이 잘 드러나죠.
    집안에 어린이가 있다면 관심을 가지고 관찰해보시면 알겁니다.

    하지만 교육과 사회화를 거친 성인이 되고, 자아가 형성된 후라면 이야긴 또 틀리겠죠.

  5. BlogIcon 초인 2009/09/21 23:45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잘 보고 갑니다.
    저도 이런거 안믿었는데
    역시나 ㅋㅋ
    전 전혀 다른 혈액형으로 나와서 ㅋㅋ
    역시 혈액형따윈 인간의 운명을 결정 할 수 없어욬

  6. BlogIcon 라라윈 2009/09/22 02:30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혈액형을 토대로 상대방을 파악하는 하나의 요령으로 참고하는 것은 몰라도...
    혈액형 해석에서 나온대로 미리 상황을 단정짓는 것은
    참 힘들어지는거 같아요...

  7. BlogIcon 검은괭이2 2009/09/22 07:01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혈액형을 믿지도 않지만....;; 그걸 만약 본다고 해도 재미로만 즐기면 되지 맹신(?)에 가까울 정도라면 그건 영 아니라는 생각이... ㅎ 좋은 글 잘 보구 갑니다^^ ㅎ

  8. BlogIcon 여울해달 2009/09/22 10:32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혈액형으로 사람의 성격이 규정된다면...
    전세계의 사람들이 전부 4가지 유형의 성격만을 가지고 있다는 소리가 되는데, 정말 말도 안되는 소리죠.
    과학을 맹신하거나 맹종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제대로 된 과학적 근거가 없는 이런 이론들은 정말 어이가 없을 따름이지요.
    그저 재미로 즐기면 충분하지만, 대한민국에서는 이미 재미의 범주를 넘어 버린듯 합니다.^.^;

  9. BlogIcon 장대비 2009/09/22 20:10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여성 잡지 구석에나 나올법한 혈액형별 성격학(?)같은 것을 맹신하면서 다른 사람의 혈액형만 듣고는 그 사람은 이렇다 저렇다 단정짓는 사람들이 의외로 굉장히 많습니다.
    저도 작년에 블로그에 글을 쓴게 있어 트랙백 보내드려요.
    아무튼 대학물까지 드신 분들이 그런 이야기를 진지하게 하는걸 본적이 있는데 뭐랄까.. 사이비 종교에 빠진 사람 같은 섬뜩함마저 느껴졌습니다^^

  10. vividmaker 2009/11/07 23:13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얼마전에 버스에서 초등학생 여자아이들이
    '자신들의 남자친구는 혈액형이 ㅁ이어서 성격이 ㄹ이다'
    라고 평가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논리적인 능력이 부족한 아이들이 어렸을 때 부터 혈액형으로 판단하는 환경에서 자란다면
    나중에 성인이 되었을 때는 심각한 문제로 되돌아올 수 있을것 같더군요.
    안타깝군요..
    부디 현명한 부모와 교사들이 혈액형에 대한 사실을 아이들에게 잘 알려주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잠시 해봅니다만, 개인적인 경험상 주위의 어른들을 보면 기대하는 건 좀 무리인듯 싶군요.

    • BlogIcon guybrush 2009/11/08 16:07  address  modify / delete

      아이들 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논리적인 사고력이 부족합니다. 초등 교육에서 고등 교육에 이르기까지 논리 교육을 받긴 합니다만, 그 걸 체화시키는 못하죠. 그저 목소리 크면 장땡이라고 해야 하나... 주변 어른들을 보면 이런 현상은 쉽게 개선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11. 그리피스 2010/02/23 06:15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남자들은 그래도 믿는비율이 아주 적은편 같은데
    왜 유독 여성들은 혈액형에 집착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가더군요.
    맨처음 보자마자 다짜고짜 혈액형부터 묻는 여자보면 정말 기가차서 말이 안나옵니다.
    거기다가 b형이라고 대답하면 욱하는 성격이죠? 바람둥이네요..이런 개드립이라도 치면
    정이 떨어져서 그사람 자체를 다시는 보고싶지가 않네요

    혼자 재미로 믿는건 뭐라 안하겠는데 다른사람에게 불쾌함을 줄정도로 티를 내는분들은
    제발 자제 해줬으면 합니다..

    • BlogIcon guybrush 2010/02/24 16:38  address  modify / delete

      남녀를 불문하고 이런 비이성적인 이론에 빠지는 사람들을 보면 참으로 한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12. 호랑이가면 2010/05/30 16:46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다수결의 원칙이란게 오히려 옳지 못할때가 훨씬 많은법이죠. 한 심리학자는 그럴경우 아예 좋은 인식으로 받아들여 지는 O형이라고 거짓말을 하라고 권하더군요. 깊이 파고들어 공부하려 하지도 않으면서도 의견을 바꾸지 않는 고집을 부리는것은 정치성향과도 비슷하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