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엇인가를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무엇은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들이거나 삶의 목표들 혹은 그저 막연한 기다림이죠.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이루어 낼 수 있는 것일 수도 결코 이룰 수 없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이런 사실이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이 작품에서 이야기 하는 것은 우리가 그 무엇인가를 항상 기다리며 살아간다는 것 자체입니다.
죽음이라는 우리가 결코 알 수 없는 '개인적인 종말'이 오기 전까지
우리는 항상 무엇인가를 기다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삶은 어찌 보면 기다림의 연속입니다.
사뮤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는 이 기다림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고도'가 상징하는 것은 사랑 혹은 희망이거나 구원자일 수도 있고 죽음일 수도 있습니다.
베케트가 주목하는 것은 우리가 어제도 오늘도 '고도'를 계속해서 기다린다는 사실입니다.
양초가 자신을 태우며 빛을 내듯이 우리는 각자의 시간을 태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고도'가 무엇이든지 간에 우리는 '고도'를 기다립니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그 기다림의 사슬을 끊고자 하는 시도가 아닙니다.
그저 우리의 삶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관망하고 있을 뿐입니다.
마치 그리스신화의 시시포스(Sisyphos)가 바위를 밀어올리고 또 밀어올리는 영원한 벌을 받고 있듯이
우리 또한 벗어날 수 없는 영원한 기다림이라는 순환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인간이 받고 있는 숙명적인 벌(罰)일 수도 있죠.
반복의 순환이기에 삶은 의미를 잃게 되고 허무해집니다.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관계(關係)를 통해 삶의 허무 속에서 위안을 얻습니다.
서로 상처를 주고 화해를 하며 포옹해주죠. 그것은 인간이라는 존재들간의 소통입니다.
그동안 시간은 종말을 향해 흐름을 멈추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그러한 행동들은 삶이라는 시간의 흐름을 견뎌낼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위안(慰安)이 되는 것입니다.
등장인물들은 극이 끝날 때까지 대화를 합니다.
대화를 통한 소통은 연극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이고 시간의 흐름이며 삶의 흐름입니다.
또 한가지 위안이 되는 것은 망각(忘却)입니다.
디디와 고고는 바보스럽게도 어제 했던 일들을 잊고, 오늘 또 하고 그리고 다시 잊어버립니다.
어찌보면 망각은 이미 했던 행동들을 다시 할 수 있게 해줍니다.
극중의 주인공들은 심지어 자신들이 왜 나무 아래에 서있는지조차도 잊어버렸습니다.
에스트라공: 그만 가자.
블라디미르: 갈 수는 없다.
에스트라공: 왜?
블라디미르: 고도를 기다려야지.
에스트라공: 참 그렇지.
이런 대화가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반복해서 나타납니다.
주인공들은 예전부터 이런 대화를 해왔을 것이고, 앞으로도 계속 이런 대화를 할 것입니다.
주인공들은 계속해서 망각합니다. 망각은 삶의 반복을 가능케 해줍니다.
그리고 시간은 계속해서 알 수 없는 끝을 향해 진행됩니다.
그들은 그저 기다릴 뿐입니다. 그러기에 망각은 기다림을 가능케 해줍니다.
베케트는 삶을 '기다림'으로 보고 있습니다.
'관계'와 '망각'이라는 수단을 통해 삶이 소진되어 가는 것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 줍니다.
그 무엇은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들이거나 삶의 목표들 혹은 그저 막연한 기다림이죠.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이루어 낼 수 있는 것일 수도 결코 이룰 수 없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이런 사실이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이 작품에서 이야기 하는 것은 우리가 그 무엇인가를 항상 기다리며 살아간다는 것 자체입니다.
죽음이라는 우리가 결코 알 수 없는 '개인적인 종말'이 오기 전까지
우리는 항상 무엇인가를 기다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삶은 어찌 보면 기다림의 연속입니다.
사뮤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는 이 기다림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고도'가 상징하는 것은 사랑 혹은 희망이거나 구원자일 수도 있고 죽음일 수도 있습니다.
베케트가 주목하는 것은 우리가 어제도 오늘도 '고도'를 계속해서 기다린다는 사실입니다.
양초가 자신을 태우며 빛을 내듯이 우리는 각자의 시간을 태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고도'가 무엇이든지 간에 우리는 '고도'를 기다립니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그 기다림의 사슬을 끊고자 하는 시도가 아닙니다.
그저 우리의 삶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관망하고 있을 뿐입니다.
마치 그리스신화의 시시포스(Sisyphos)가 바위를 밀어올리고 또 밀어올리는 영원한 벌을 받고 있듯이
우리 또한 벗어날 수 없는 영원한 기다림이라는 순환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인간이 받고 있는 숙명적인 벌(罰)일 수도 있죠.
반복의 순환이기에 삶은 의미를 잃게 되고 허무해집니다.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관계(關係)를 통해 삶의 허무 속에서 위안을 얻습니다.
서로 상처를 주고 화해를 하며 포옹해주죠. 그것은 인간이라는 존재들간의 소통입니다.
그동안 시간은 종말을 향해 흐름을 멈추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그러한 행동들은 삶이라는 시간의 흐름을 견뎌낼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위안(慰安)이 되는 것입니다.
등장인물들은 극이 끝날 때까지 대화를 합니다.
대화를 통한 소통은 연극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이고 시간의 흐름이며 삶의 흐름입니다.
또 한가지 위안이 되는 것은 망각(忘却)입니다.
디디와 고고는 바보스럽게도 어제 했던 일들을 잊고, 오늘 또 하고 그리고 다시 잊어버립니다.
어찌보면 망각은 이미 했던 행동들을 다시 할 수 있게 해줍니다.
극중의 주인공들은 심지어 자신들이 왜 나무 아래에 서있는지조차도 잊어버렸습니다.
에스트라공: 그만 가자.
블라디미르: 갈 수는 없다.
에스트라공: 왜?
블라디미르: 고도를 기다려야지.
에스트라공: 참 그렇지.
이런 대화가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반복해서 나타납니다.
주인공들은 예전부터 이런 대화를 해왔을 것이고, 앞으로도 계속 이런 대화를 할 것입니다.
주인공들은 계속해서 망각합니다. 망각은 삶의 반복을 가능케 해줍니다.
그리고 시간은 계속해서 알 수 없는 끝을 향해 진행됩니다.
그들은 그저 기다릴 뿐입니다. 그러기에 망각은 기다림을 가능케 해줍니다.
베케트는 삶을 '기다림'으로 보고 있습니다.
'관계'와 '망각'이라는 수단을 통해 삶이 소진되어 가는 것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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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한번 봐야지 하면서 아직 못보고 있는 책(연극)이 고도를 기다리며 입니다.
마치 고도를 기다리는 것처럼 계속 미루기만 하다가 까먹고 이런 글을 보면 다시 생각나고 그런가 봅니다.
내용이 궁금했었는데 큰 흐름은 조금 짐작할 수 있겠군요. 그렇게보니 인간은 잘 만들어진 존재 같기도 하네요. 내용중에 잊어리기에 기다릴 수 있다는 것이 와닿습니다. 책으로도 있던데 근래 꼭 봐야 겠습니다.
글 잘 읽고 갑니다.
부족한 글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